https://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267
보리농사부터 제맥, 그리고 맥주까지 만드는 양조장
충북 음성 UF생극양조, 농사꾼이 쓰는 맥주 이야기
충북 음성에 있는 UF생극양조는 보리밭 옆에 맥주양조장이 있다. 사진은 UF생극양조의 허성준 대표가 자신이 농사지은 보리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 뒤편에 보이는 건물이 양조장이다.
‘천생 농사꾼’이다. 농사에 이력이 난 사람을 뜻하는 관용어다. 군대를 제대하고 농사를 시작해 올해로 13년 된 농부가 있다. 아직 관용어만큼 이력이 붙지는 않았겠지만, 인터뷰를 위해 양조장을 찾았던 지난 6월 초 그의 모습은 모내기를 중간에 끊고 달려온 농사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양조장 옆 보리밭에선 두줄보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지금쯤 보리 수확이 한창일 것이다. 이 보리는 농사꾼의 손에서 맥아(몰트)가 되고 다시 그의 손에서 크래프트맥주가 된다. 충북 음성에 있는 ‘UF생극양조’의 허성준 대표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농업을 평생의 일로 선택한 허 대표.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논농사와 밭농사를 합쳐 20만평의 농사를 지었다. 올해는 버거워서 줄였는데, 그래도 16만평 규모다. 이 중에 3만평 정도가 보리농사다. 맥아로 환산하면 25톤(t)가량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라고 허 대표는 말한다.
처음부터 보리농사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여성을 만나 결혼한 허 대표는 처가인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일본 위스키에 고전하는 스카치위스키를 목도했다. 2013년의 일이다. 일본의 농산물로 만든 술이 본고장인 유럽 시장에서 통한다면 우리 농산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보리농사를 결정짓고 이듬해부터 파종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한 끝에 이젠 기계 영농이 가능한 상황까지 발전시켜왔다.
보리농사가 잘 되었으니 다음은 크래프트맥주였다. 남들은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떠올리면 맥즙을 당화 발효하는 브루하우스와 발효조를 생각하는데, 그는 달랐다. 제맥기였다. 군산맥아가 제맥기를 도입할 때 허 대표도 설계작업에 들어간다. 2017년의 일이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충청대 퇴직 교수)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외국산 장비를 들여올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 기계는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느리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국산 장비를 만들게 된다.
2020년 제맥기가 완성되었다. 한 번에 800kg을 제맥할 수 있는 드럼형 기계다. 비슷한 시기에 앞서 말한 브루하우스와 발효조 등을 들여와서 설치를 끝냈다.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그는 이마저도 천천히 가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연습양조하는 수업시간으로 활용했다. 직접 제맥하고 맥주를 만들면서 기계적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맥주 양조에서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UF생극양조의 허성준 대표는 직접 보리를 맥아로 만든다. 사진은 양조장에 있는 제맥기다. 800kg을 한번에 제맥할 수 있는 사이즈이며 국내에서 제작한 기계다. 2년 뒤에는 오븐기를 설치해 스페셜티몰트도 생산할 계획이다.
이처럼 고된 길을 걷는 이유를 허 대표에게 묻자 “자기 재료로 만들어야 세계적인 술이 된다. 아니면 삼류 술로 남게 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다양한 몰트를 만들기 위해 제맥기를 설계했던 분들께 오븐기 설계도 의뢰한 상황이다.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페셜티 몰트까지 만든다면 거의 모든 맥주 재료를 국산으로 만들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허 대표는 제맥기를 이용해서 수없이 맥아를 만들어 오면서 다양한 맥아 데이터를 갖게 되었다. 즉 맥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양조장 대표가 되었다는 뜻이다.
UF생극양조를 취재하면서 계속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법의 목적 중 하나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익의 보호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특산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보리 생산자도 같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직접 농사를 짓고 생산까지 하는 UF생극양조의 맥주는 지역특산주가 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이 술은 지역특산주로 판매될 수 있어야 한다. 허 대표는 이 문제를 포함한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현안을 풀기 위해 여러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UF생극양조에서 생산하는 맥주들이다. 왼쪽부터 ‘돈(DON, 세종스타일)·미드나잇(엠버에일)·UF싱글몰트라거(라거)·필더바이브(밀맥주)·ESC(비엔나라거)’다.
UF생극양조에서 만들고 있는 맥주는 모두 5종류다. 자체 브랜드 3종과 콜라보 제품이 2종이다. 자체 브랜드는 밀맥주인 ‘필 더 바이브’와 흑호(품종명)로 만든 ‘UF유기농싱글몰트라거’, 그리고 KIBA2024에서 은메달을 받은 세종 스타일의 ‘돈(DON)’이다. 콜라보 맥주는 코끼리브루어리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비엔나라거 스타일의 ‘ESC’와 2024년 대한민국주류대상을 수상한 딸기향 나는 엠버에일 스타일의 ‘UF앰버인텐소’가 있다. 앞으로 새롭게 나올 제품은 충북 음성의 특산 과일인 복숭아를 이용한 와일드맥주라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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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농사부터 제맥, 그리고 맥주까지 만드는 양조장
충북 음성 UF생극양조, 농사꾼이 쓰는 맥주 이야기
‘천생 농사꾼’이다. 농사에 이력이 난 사람을 뜻하는 관용어다. 군대를 제대하고 농사를 시작해 올해로 13년 된 농부가 있다. 아직 관용어만큼 이력이 붙지는 않았겠지만, 인터뷰를 위해 양조장을 찾았던 지난 6월 초 그의 모습은 모내기를 중간에 끊고 달려온 농사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양조장 옆 보리밭에선 두줄보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지금쯤 보리 수확이 한창일 것이다. 이 보리는 농사꾼의 손에서 맥아(몰트)가 되고 다시 그의 손에서 크래프트맥주가 된다. 충북 음성에 있는 ‘UF생극양조’의 허성준 대표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농업을 평생의 일로 선택한 허 대표.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논농사와 밭농사를 합쳐 20만평의 농사를 지었다. 올해는 버거워서 줄였는데, 그래도 16만평 규모다. 이 중에 3만평 정도가 보리농사다. 맥아로 환산하면 25톤(t)가량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라고 허 대표는 말한다.
처음부터 보리농사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여성을 만나 결혼한 허 대표는 처가인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일본 위스키에 고전하는 스카치위스키를 목도했다. 2013년의 일이다. 일본의 농산물로 만든 술이 본고장인 유럽 시장에서 통한다면 우리 농산물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보리농사를 결정짓고 이듬해부터 파종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고생한 끝에 이젠 기계 영농이 가능한 상황까지 발전시켜왔다.
보리농사가 잘 되었으니 다음은 크래프트맥주였다. 남들은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떠올리면 맥즙을 당화 발효하는 브루하우스와 발효조를 생각하는데, 그는 달랐다. 제맥기였다. 군산맥아가 제맥기를 도입할 때 허 대표도 설계작업에 들어간다. 2017년의 일이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충청대 퇴직 교수)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외국산 장비를 들여올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 기계는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느리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국산 장비를 만들게 된다.
2020년 제맥기가 완성되었다. 한 번에 800kg을 제맥할 수 있는 드럼형 기계다. 비슷한 시기에 앞서 말한 브루하우스와 발효조 등을 들여와서 설치를 끝냈다. 맥주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그는 이마저도 천천히 가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연습양조하는 수업시간으로 활용했다. 직접 제맥하고 맥주를 만들면서 기계적 특성을 파악하는 일은 맥주 양조에서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UF생극양조의 허성준 대표는 직접 보리를 맥아로 만든다. 사진은 양조장에 있는 제맥기다. 800kg을 한번에 제맥할 수 있는 사이즈이며 국내에서 제작한 기계다. 2년 뒤에는 오븐기를 설치해 스페셜티몰트도 생산할 계획이다.
이처럼 고된 길을 걷는 이유를 허 대표에게 묻자 “자기 재료로 만들어야 세계적인 술이 된다. 아니면 삼류 술로 남게 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다양한 몰트를 만들기 위해 제맥기를 설계했던 분들께 오븐기 설계도 의뢰한 상황이다.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페셜티 몰트까지 만든다면 거의 모든 맥주 재료를 국산으로 만들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허 대표는 제맥기를 이용해서 수없이 맥아를 만들어 오면서 다양한 맥아 데이터를 갖게 되었다. 즉 맥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양조장 대표가 되었다는 뜻이다.
UF생극양조를 취재하면서 계속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법의 목적 중 하나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익의 보호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특산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보리 생산자도 같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직접 농사를 짓고 생산까지 하는 UF생극양조의 맥주는 지역특산주가 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이 술은 지역특산주로 판매될 수 있어야 한다. 허 대표는 이 문제를 포함한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현안을 풀기 위해 여러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UF생극양조에서 생산하는 맥주들이다. 왼쪽부터 ‘돈(DON, 세종스타일)·미드나잇(엠버에일)·UF싱글몰트라거(라거)·필더바이브(밀맥주)·ESC(비엔나라거)’다.
UF생극양조에서 만들고 있는 맥주는 모두 5종류다. 자체 브랜드 3종과 콜라보 제품이 2종이다. 자체 브랜드는 밀맥주인 ‘필 더 바이브’와 흑호(품종명)로 만든 ‘UF유기농싱글몰트라거’, 그리고 KIBA2024에서 은메달을 받은 세종 스타일의 ‘돈(DON)’이다. 콜라보 맥주는 코끼리브루어리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비엔나라거 스타일의 ‘ESC’와 2024년 대한민국주류대상을 수상한 딸기향 나는 엠버에일 스타일의 ‘UF앰버인텐소’가 있다. 앞으로 새롭게 나올 제품은 충북 음성의 특산 과일인 복숭아를 이용한 와일드맥주라고 한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